와상장애인, 파리행 티켓 결제하니 항공사 “6좌석 구매하라” 파리 편도 티켓 1000만 원 넘어… 결국 취소 “장애인도 비행기 타고 싶다” 인권위 진정
중증와상장애인 이건창 씨가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진이
대한항공이 중증와상장애인인 이건창 씨에게 정상운임의 6배를 지불하라고 요구해 장애인인권단체들이 반발하며 9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이 씨가 소속된 김포장애인자리생활센터 소속 활동가들은 ‘장애인의 항공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인권위에서 한진칼(KAL) 본사까지 행진을 하고, 한진칼 건물 앞에서 다시 한번 항의의 시간을 가졌다.
이 씨는 허리 각도를 160도 이상 세울 수 없어 평소에도 침대형 휠체어를 이용하는 와상장애인이다. 따라서 비행기를 탈 때도 그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는 전장연과 함께 해외에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알리고자 파리 패럴림픽 기간에 유럽으로 향하는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좌절됐다.
김포장애인야학 전하윤 권리중심공공일자리팀장은 “이건창 씨는 대한항공 항공권을 편도 160만 원에 예매했다. 그러나 실제 탑승 확인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160만 원 상당의 좌석을 6개 예매해서 ‘눕는 좌석’으로 만들어야 하고, 엠블런스 등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에 환불을 요구하자 항공사는 약 150여만 원의 취소 수수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이 씨는 기대했던 파리행을 포기했다.
항공사의 부당한 대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씨는 2020년 8월 김포장애인야학에서 마련한 제주도 여행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중증장애인인 그에겐 생애 첫 비행이었다. 전하윤 팀장은 “당시에도 항공사는 활주로를 오가는 사설 구급차 비용 15만 원에 더해 일반 좌석 6개를 이어 붙여야 한다며 6개의 좌석 구매를 요청했다. 결국 그 비용을 다 지불했다. 당시에도 프랑스 파리 가는 비용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었다”면서 “이번 파리 여행을 모두가 기대했는데 무산되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이건창 씨. 사진 김진이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버스, 지하철에 이어 비행기까지 비장애인들에게는 평범한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는 6배의 요금을 부과하고, 넘기 힘든 문턱인 현실이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항공이 장애인 이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며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 ‘장애인 특사단’을 파견해 장애인 인권, 특히 와상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릴 계획이었으나 대한항공의 무리한 요구에 파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이건창 씨는 “여행을 가고 싶다. 비행기를 타고 싶다”며 부당한 현실에 울분을 토로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 씨는 직접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대한항공이 있는 한진칼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김진이
진정서를 제출한 후, 장애인 활동가들은 인권위에서 한진칼 본사 앞까지 약 1시간 동안 행진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알려 나갔다. 한진칼 본사 앞에 도착한 이들은 또다시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대한항공에 항의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경찰을 동원해 이들을 막아섰다. 이에 대해 이재민 전장연 활동가는 “대한항공은 계속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오늘도 경찰을 동원해 우리의 방문을 막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경희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과거 흑인과 백인 좌석을 나누었던 시절처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6배의 항공료를 부과하는 지금의 현실을 황당해하는 시간이 올 것”이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서미화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장애인 항공 이동권’이 보장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